▲ 안종선(교수)
보탑사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483번지에 자리하고 있다. 진천에서 유관순사우가 있는 천안시 병천면으로 가는 도로가 21번 도로인데 이 도로에서 찾아가야 한다.

진천에서 문백면과 병천으로 이어지는 17번 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향하다가 사석리 성암초등학교가 있는 서석리 삼거리에서 21번 도로로 바꾼다. 청주 방향이라고 쓰인 17번 도로를 계속 타면 길이 다르므로 반드시 병천 방향인 21번 도로를 타야 한다.

길이 갈라진 삼거리에서 약 1.5키로 정도를 가면 보탑사를 알리는 도로 표지판이 오른쪽으로 나온다. 이 갈라지는 곳에 두개의 길이 있는데 하나는 보탑사로 가는 길이고 하나는 백곡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2005년 4월 현재 백곡면으로 넘어가는 도로는 이북에서 약 2키로까지는 포장도로이지만 나머지는 공사중이다.

보탑사로 들어가는 길에는 보탑사와 연곡리가 같이 표시되어 있다. 진천읍 상계리, 연곡리는 삼국시대 신라와 고구려의 국경지대로 상계리 계양마을의 담안밭에 사후 흥무대왕으로 추존된 삼국 통일의 영웅 김유신의 탄생지가 있으며, 탄생지를 지나 연곡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호수가 나타난다. 호수를 따라 계속 달리면 길이 갈라지는 데 보탑사로 들어가는 길은 계곡으로 이어지는 직선 길이다. 보탑사를 알리는 표식이 있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 통일대탑 보탑사가 자리하고 있다.

보탑사에 가면 지난날 신라가 민족통일을 이뤄냈듯 남북이 통일되기를 기원하며 지었다는 삼층목탑을 만날 수 있는데, 현대 건축에서는 반드시 쓰이는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으며 내부로 들어가 계단을 통해 3층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연곡리 주변의 자연경관을 시원하게 둘러볼 수도 있다.

보탑사가 자리한 산은 만뢰산이다. 만뢰산은 보탑사가 있는 터의 주산이라 할 수 있다. 만뢰산은 충북 진천군 진천읍에 있는 높은 산이다. 높이는 612미터에 지나지 않은데 이 높이는 사방에 특별히 높은 산이 없는 충청북도 진천지방에서는 최고봉으로 대접받는 높은 산봉우리이다. 따라서 만뢰산은 진천의 주산이다. 만뢰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모두 길고 능선과 능선사이에 형성된 골짜기는 깊다.

 

 

 

한남금북정맥이 갈라지는 칠현산에서 남으로 달려 안성의 서운산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에서 다시 가지쳐 나온 능선은 보탑사 뒤의 만뢰산과 김유신 장군의 태실지가 있는 태령산을 거쳐 동남으로 뻗어 오창 부근의 넓은 평야지대에 이르기까지 높은 능선을 유지한다.

부근에서는 가장 실한 능선이다. 이 능선이 충청북도의 서쪽과 충청남도 동쪽의 도계를 이루고 있는데 신라때 김유신장군이 태어나던 무렵에는 신라와 백제가 패권을 다투던 중요한 전선( 戰線)이기도 했다. 그 증거가 만뢰산성으로 남아있다.

보탑사로 가는 길을 따라 달리면 먼저 삼계리가 나오고 골짜기 깊숙이 들어가면 상계리를 지나 연곡리가 나온다. 이 계곡은 꽤 깊어 한참동안 들어가야 한다. 한참 가다보면 김유신 장군 생가가 우측으로 보인다. 생가가 복원되어 있기는 하나 생가가 장군이 탄생할 때의 집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사실 신라시대의 생가가 본래의 모습으로 남아있거나 복원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아울러 이곳에 생가지라는 의미만이 남을 뿐이다. 산 능선에는 태실지가 있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이곳에 올 때마가 그곳에 갈 시간을 놓쳐 아쉽다.

 

 

정말 골짜기 안에 무엇이 있는지 들어와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게 시리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막힌 지형이다. 만뢰산 줄기의 능선을 업고 밋밋한 지형위에 보탑사는 위치하고 있다.

고려시대 큰 절터로만 전해오던 연곡리 비립동에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비석이 있다. 보물404호인 백비가 논 가운데 있던 것을 정화하여 비각을 세워 보탑사 경내에 보존하고 있으며 연곡사지와 관련된 3층석탑이 있다. 연곡사지 3층 석탑은 잘 보이지 않으므로 신경을 써서 찾아보아야 한다.

1991년도 고건축 문화재 팀이 이곳을 답사하고 신영훈 문화재 전문위원의 감독아래 1992년 5월에 보탑사를 착공하여 건축하였으며 1층에는 심주를 중심으로 사방불을 모시고 2층에는 경전을 모시고 3층에는 미륵3존불을 모셨다.

보탑사라 이름한 뜻은 법화경 견보탑품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문을 다보여래께서 증명하고 찬탄하기 위해 칠보탑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여주신다. 그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보배탑을 세움으로서 모든 사람의 가슴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심어주는 자비심이 가득 차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뜻에서 보탑사라 하였다. 부지규모는 4천여평이고 연면적은 170평이고, 탑의 높이는 54m이고 주지는 지광 우위근이다.

보탑사는 목탑형 불전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높은 불전건물이다. 오로지 나무만을 이용해 짜맟추어 지은 3층의 불전이다. 현존기술로는 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로만 지을 수 있는 한계가 3층이라고 한다. 과거의 우리 조상들은 짜맞추는 기법으로 나무만을 가지고 9층을 지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목탑형 건물로는 쌍봉사와 법주사 팔상전 등을 들 수 있으나 사람이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더구나 싸봉사는 소실되었다고 한다. 이 목탑 건물을 지은 사람은 목수 신영훈씨라고 하는 분이라고 한다. 신영훈 씨가 지은 보탑사 목탑불전은 사람이 올라갈 수 있게 지어졌다. 목수로서 역사서에 나오는 신라의 황룡사 구층탑을 재현해 보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었던 그는 목탑건축으로 후대에 남을 오늘의 절집을 마련했다.

목탑의 높이는 42.7m이다. 일층은 사방불을 안치했다. 석가여래, 비로자나불, 약사여래, 아미타여래다. 2층에는 가운데에 윤장대가 있고 그 안에는 대장경을 봉안했다. 윤장대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경서와 석경이 비치돼있다. 삼층은 남향한 미륵불을 모시고 있다.

보탑사의 목탑은 불전양식의 신기원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통불사에 충실하여 오로지 목재로만 결구된 중층식 건물은 가로로 퍼진 대웅전식 불전에는 없는 장엄함과 웅장함 속에 함유된 경건함을 덤으로 느낄 수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단청이며 기왓장의 색깔, 하늘을 찌르고 있는 보주의 형상도 하늘에 닿고 땅에 이르는 목탑의 외형적 완성도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목탑 뒤에는 백비가 비각 안에서 보호받고 있다. 보물 404호로 지정된 진천 연곡리 석비가 자리한 곳은 보탑사 경내에며 진천읍 연곡리 비립동 485-2번지에 해당한다.

일명 백비라고도 한다. 비문이 없으며 석비의 원시형식으로 이른 바 백비 그대로다. 다만 시대적 일면은 조형 형식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귀부는 거북 몸뚱이에 말머리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이수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려고 하는 모습인데 용을 조각한 솜씨가 일품이다.

이것은 월광사 원랑선사비의 이수와 그 조형 기법이 비슷하다. 비신은 평면으로 잘 다듬었으나 전혀 글자를 새긴 흔적이 없고, 이수에도 가로27cm, 세로 25cm 의 방형 액을 만들었으나 전제가 없다. 듣기로는 너무도 청렴하고 결백한 사람에게 드리는 비석으로 글자를 새기는 것조차 불경스럽다 하여 백비라 한다.

좌대부터 갓 위까지의 높이가 3.6m, 비석까지 높이는 2.2m, 가로 0.8m, 세로 0.6m 의 크기이다. 1964년 7월 3일 보물 404호로 지정되었고 1968년 12월에는 주위 33평의 대지를 확보하였으며 현재는 보호시설을 구축하였다.

풍수에서 보탑사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사실 보탑사를 지을 때 사용한 수법이나 종교적 의미도 강할 것이다. 그러나 풍수적으로는 그 집이 이층인가? 혹은 삼층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이 장소가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곳인가? 혹은 절을 세우기에 적당한가를 따지는 양기(陽基), 혹은 양택풍수(陽宅風水) 개념이다. 양택풍수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기본적인 사향으로 양택삼요(陽宅三要)일 것이다. 보탑사의 경의 이 규칙에 어긋남이 없다.

보탑사에서는 보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마치 연꽃송이처럼 둘러쳐진 산을 볼 수 있다. 즉 주위의 산이 모두 연꽃이라면 보탑사가 세워진 곳은 바로 꽃의 심방에 해당하는 지점인 것이다. 이는 모든 기운이 모여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보탑사는 풍수를 바탕으로 한 산지형 절터에서도 교쇄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분지의 중심에 세워진 곳이 된다.

 

안종선교수 블로그 http://blog.naver.com/sungbosung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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