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종선(교수)
오대산 적멸보궁을 찾나 나섰다. 30인승 버스를 대절해서 출발했다. 아침 일찍 출발했기에 출발했을 때는 어둑어둑한 시간이었다. 비가 오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걱정이 되었지만 모두가 편안한 마음이었는지 비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오래 걸리지 않아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오대산에 자리한 적멸보궁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오대산 일대는 우리나라 불교의 일대 성지라고 할 만큼 불교유적, 따라서 우리의 문화유산이 많고 신심의 전통은 오늘에도 이어져 왕성한 불심의 불꽃은 계곡 곳곳에서 활기차게 타오르고 있는 곳이다.

 

이 불교성지의 구심점에 월정사가 자리하고 있다. 그 다음이 계곡 막다른 곳 명당에 자리 잡은 상원사, 그 다음이 비로봉으로 올라가는 중턱의 중대사자암, 그리고 가장 성스러운 곳이 중대사자암 위쪽 능선봉에 선 적멸보궁이다.

오대산 적멸보궁은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중의 하나이다. 이밖에 오대산에는 북대사, 동대사가 있고 서대사는 비로봉 능선 코스 서쪽 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데 수정암으로 불리기도 한다.

오대산지역은 지형상 백두대간과 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차령산맥과의 사이에 펼쳐지는 긴 계곡의 끝이자 분지형 평지 끝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의 행선지는 오대산적멸보궁(月精寺寂滅寶宮)이다. 강원도 평창군(平昌郡) 진부면(珍富面) 동산리(東山里) 오대산 월정사에 딸린 법당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 팔작지붕의 이익공집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이 절은 불상을 모시지 않고 석가세존의 정골사리(頂骨舍利)를 모셨기 때문에 아무도 앉지 않은 좌복만이 불대(佛臺)에 대좌하고 있다. 건물은 중앙칸에는 두 짝의 판장문을 달고 좌우에 중방을 설치한 단순한 구조이다. 강원도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다.

적멸보궁이 있는 오대산은 예로부터 서울에서 강릉으로 오가는 요로이면서도 한적한 강원도 오지여서 조선시대 오대사고지의 하나가 이곳에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요즘 월정사와 오대산은 국내 어느 절보다도 교통이 편리하다. 부근에 영동고속도로가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진부 나들목에서 나와 6번 도로를 타고 이동하여 간평리 부근에서 456번과 갈라져 주문진 방향으로 가다가 간평교 부근에서 월정사에 이르는 446번 도로를 갈아탄다.

한참을 달리면 월정사가 나온다. 강원도 불교문화의 중심축을 이루는 절은 월정사이다. 오대산으로 들어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동대산 능선이 고도를 높이고 왼쪽에는 두로봉에서 대간과 떨어져 나온 산줄기는 상왕봉(1493m) ,비로봉(1563 m), 호령봉(1560m)을 거쳐 남하하다가 1374m봉에 이르러 서쪽으로 진로를 바꾸어 계방산으로 향하는데 1374봉에서 동으로 뻗은 능선 한 가닥은 월정사를 외부로부터 감싸듯 싸안고 오대천에 이른다.

이처럼 아름다운 위치에 주변에 울창한 거목으로 이루어진 전나무숲이 우거져 있어 국내 어느 절보다 산과 수목의 정기가 충만한 절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 인상은 상쾌하면서도 경건한 것이다.

오대산에는 이밖에 많은 사찰이 있는데 상원사를 비롯하여 월정사 뒤쪽 동대산 산록에 일명 동대사로 불리는 관음암이, 상왕봉 능선 아래에 북대사로 불리는 미륵암이, 정상으로 올라가는 비로봉 산자락에 일명 중대사로 불리는 사자암이, 비로봉코스의 지능선과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쪽에 나란히 뻗은 지능선 자락에 일명 서대사로 불리는 수정암이 있다.

중대인 사자암에서 비로봉 쪽으로 올라가는 지능선상에 오대산 계곡이 내려다보이고 남으로 무수한 산봉우리들이 부복하고 있는 듯한 적멸보궁이 있다.

우리 일행의 목적은 적멸보궁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상원사와 월정사에 시간을 덜 할애하고 적멸보궁을 향해 서둘렀다. 상원사를 지나 입산통제소 앞에 차를 세울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만약 이 골짜기에 길이 없이 걸어와야 했다면 하루 만에 돌아볼 생각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매표소에서 전나무 숲을 지나 들어가는 길은 아직 한적했다. 아침 일씩 서둔 사람들이 벌써 산사를 둘러보고 내려오기는 해도 비가 온 후라 그런지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문득 생각해 보니 비가 그쳐있었다.

비가 온 뒤라 간혹 산길에는 흙탕길이 되기도 했지만 산을 오르는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상원사 아래 주차장은 이미 붐비고 있다. 10여대의 대형버스들이 벌써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이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모두 적멸보궁에 오를 것인지 모르나 그러면 사람이 붐빌 것이다, 우리 일행은 서두르기 시작했다.

우선 사자암으로 향했다. 적멸보궁을 들리려면 사자암을 거쳐야 한다. 멀리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오대산은 언제나 사람이 많은 산이다. 사람들이 많아지면 시끄러워질 것이다. 그전에 사자암을 지나 적멸보궁으로 올라가야 한다.

우리 회원들은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주차장에서 산길로 약 1킬로정도의 거리이고 개울을 건너 산비탈에 나 있는 길로 접어들면 약 20여분이 소요된다. 20분을 서둘러 올라가면 적멸보궁이 나올 것이다.

사자암을 지나면 적멸보궁까지는 약 600미터가 남은 지점이다. 드디어 적멸보궁에 올라 한숨을 내쉰다. 드디어 도착이다. 오대산을 보자면 아직 10분의 1도 들르지 않은 것이지만 이것만으로도 족하다 하겠다.

적멸보궁이란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전각을 말한다. 보궁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최초의 적멸도량회(寂滅道場會)를 열었던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 금강좌(金剛座)에서 비롯된다.

《화엄경(華嚴經)》에 따르면, 깨달음을 얻은 부처는 처음 7일 동안 시방세계(十方世界) 불보살들에게 화엄경을 설법하기 위한 해인삼매(海印三昧)의 선정에 들었다 한다. 이 때 부처 주위에 많은 보살들이 모여 부처의 덕을 칭송하였고, 부처는 법신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과 한 몸이 되었다.



따라서 적멸보궁은 본래 두두룩한 언덕 모양의 계단(戒壇)을 쌓고 불사리를 봉안함으로써 부처가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법을 법계에 설하고 있음을 상징하던 곳이었다. 진신사리는 곧 부처와 동일체로, 부처 열반 후 불상이 조성될 때까지 가장 진지하고 경건한 숭배 대상이 되었으며 불상이 만들어진 후에도 소홀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오늘날 한국에서 적멸보궁의 편액을 붙인 전각은 본래 진신사리의 예배 장소로 마련된 절집이었다. 처음에는 사리를 모신 계단을 향해 마당에서 예배하던 것이 편의에 따라 전각을 짓게 되었으며, 그 전각은 법당이 아니라 예배 장소로 건립되었기 때문에 불상을 따로 안치하지 않았다.

다만 진신사리가 봉안된 쪽으로 예배 행위를 위한 불단을 마련하였다. 한국에는 신라의 승려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져온 부처의 사리와 정골(頂骨)을 나누어 봉안한 5대 적멸보궁이 있다.

양산 통도사(通度寺), 강원도 오대산 중대(中臺)의 월정사(月精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적멸보궁이 그것이다.
통도사는 금강계단에 진신사리를 봉안해 계율 근본도량 불보종찰(佛寶宗刹)이 되었는데, 부처가 안치되어야 할 대웅전에는 불상이 없고 불당 내부에 동서로 길게 불단만 놓여 있다.

또 불상이 안치되어 있어야 할 자리는 창으로 훤히 뚫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월정사 적멸보궁은 불사리를 안치한 정확한 장소를 알 수 없고, 다만 전각 뒤쪽의 작은 언덕에 부처의 정골사리[佛頭骨一片)를 모셨다는 기록이 있는 세존진신탑묘(世尊眞身塔墓)가 상징적으로 서 있을 뿐이다. 설악산 봉정암에는 부처의 불사리를 안치한 석가사리탑이 있는데, 뇌사리를 안치하였다 하여 불뇌보탑이라고도 한다.

태백산 정암사 적멸보궁은 다른 네 곳과는 달리 임진왜란 때 유정(惟政)이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 통도사의 진신사리를 나누어 봉안한 곳으로, 산 위에 수마노탑이 있다. 사자산 법흥사에는 진신사리가 안치된 보탑과 자장이 도를 닦았다는 토굴이 있다.

이들 5대 적멸보궁은 불교도들의 순례지이자 기도처로서 가장 신성한 장소로 신봉된다. 그 밖에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비슬산(琵瑟山) 용연사(龍淵寺), 경상남도 사천시 다솔사(多率寺) 등에도 적멸보궁이 있다.

월정사 적멸보궁 (月精寺寂滅寶宮)은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었다. 강원도 평창군(平昌郡) 진부면(珍富面) 동산리(東山里)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에 딸린 법당이다. 보궁은 석가모니가 《화엄경(華嚴經)》을 설법한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 남쪽 보리수 아래 금강좌(金剛座)에서 비롯되는데, 그 후 보궁은 불사리를 봉안함으로써 부처가 항상 그 곳에서 적멸의 법을 법계에 설하고 있음을 상징하게 되었다.

신라시대의 보천(寶川)은 화엄불교의 만다라적 발상으로 5악 경영을 하고자 오대산에 5대를 쌓았다. 그 후 자장은 그 중 중대(中臺)를󰡐문수진성(文殊眞聖)의 주처(住處)󰡑라고 생각하여 적멸보궁을 짓고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였다. 따라서 이 보궁은 4방불 신앙의 중심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로 상징되고 있다.



적멸보궁의 위치는 오대산의 비로봉을 등지고 좌우로 상왕봉과 호령봉을 거느려 풍수상으로도 용이 여의주를 문 형상이라고 한다. 건물은 중앙칸에는 두 짝의 판장문을 달고 좌우에 중방을 설치한 단순한 구조이다. 현재의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식단층 팔작지붕의 겹처마집이다.

2익공인 공포는 초익공이 앙서(仰舌)이고 그 위에 연화(蓮華)를 올려놓고 윗부분은 수서(垂舌)로 꾸몄는데 공포의 형태에서 이 건물이 조선 후기에 다시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한참동안 참배를 드리고 나와 맑은 공기를 마신다. 서둘렀기 때문인지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폐부가 시원해지며 무언가 차오르는 듯한 보람을 느낀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호소가 귀를 아리게 한다. 20여명의 불자들이 손에 염주를 들고 자식들이 잘되고 병이 없기를 빌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기로 했다. 그동안 몇 번인가 와 보았기에 이미 익숙해진 곳이기는 하다. 그래도 풍수란 배우면 배울수록 눈이 느는 것 같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하며 주위와 적멸보궁 주위를 샅샅이 뒤진다. 전순이 좀 길어 보이기는 하지만 이는 적멸보궁터가 불룩하게 융기했을 것을 감안하면 잔디가 심어진 앞뜰은 전순이 아니라 혈판에서 이어지는 기맥으로 볼 수 있겠다.

좌측으로 바라보니 지각이 길게 자라 뻗어있다. 정골사리가 묻혀있는 곳으로 알려진 자리를 기준으로 보면 우선익 방향으로 각기 2개가 앞뒤로 지각이 뻗어났다. 마치 토끼의 귀 모양으로 작은 지각이다.

계단을 내려온다. 이 계단이 하나의 지각이다. 오대산 정상으로 가는 방향으로 20여미터를 가니 바위로 이루어진 지각이 보인다. 좌우 합쳐 총 4개의 지각이다. 뒤로 돌아가 보니 용이 융기하듯 용솟음치며 기맥이 오르고 있다. 그야말로 비룡상천이 아닌가?

어디에서도 이처럼 웅장하고 패기 넘치는 비룡을 보지 못했다. 기맥의 흐름이 바위로 보호되고 있으니 가히 감탄할 만하다. 비슷한 지형이 천태종 본사 구인사 뒤 상월조사의 묘에 있으나 비교하면 가히 대적할 수 없다.

적멸보궁이 자리한 곳은 전형적인 돌혈이다. 혈상으로만 판단할 것은 아니나, 풍수에 관심이 있고 배움을 추구하니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적멸보궁이 동서남북의 중앙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대산 중대라고 했다.

풍수용어에 천십십도(天心十道)라는 말이 있다.천심십도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네 개의 산을 선으로 그었을 때 그 십자의 중앙에 혈이 있다고 본다. 유명 사찰의 경우가 이에 해당 한다. 혈 뒤에는 현무, 앞에는 주작, 좌측은 청룡이며 우측은 백호이다. 이처럼 사응(四應)이 되면 중앙에서 혈이 되고 또 사유에서 혈을 보호하게 된다. 사응이 되는 산이 중심에서 벗어나면 흉상으로 본다.

오대산 적멸보궁에서는 이 천십십도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이다. 사실 천심십도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오대산이나 천태종 본산이 있는 천태산 정도일 것이다. 물론 찾으려면 더 찾겠지만 흔하지 않음은 사실이다.

천심십도 정혈법(天心十道 定穴法)은 혈을 중심으로 전후좌우 사방에 있는 산을 연결하면 십자형(十字形)으로 서로 응하는 경우를 말한다.

뒤에는 주산 또는 현무봉과 앞에는 안산, 좌측에는 청룡 협이봉(夾耳峰), 우측에는 백호 협이봉(夾耳峰)이 서로 비슷한 크기와 높이 또 거리가 비슷하여 그 정상을 선으로 이으면 십자(十字) 모양이 되고 혈은 두 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점혈(點穴)하는 방법을 천심십도 정혈법(天心十道 定穴法)이라 한다.

이때 산의 모양과 형상은 상관없으나 4개의 산을 연결했을 때 정확하게 십자(十字)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진혈(眞穴)이 아니다. 용진혈적(龍盡穴的)하고 천심십도(天心十道)가 정확하면 발복(發福)이 크고 오래간다.

오대산 적멸보궁의 경우에는 이 천심십도가 아주 명확하다. 따라서 옛 선현들은 이 산을 오대산이라 붙였다. 즉 동서납북의 4개의 대와 중대를 합친 것이다.

오대산에는 월정사 뒤쪽 동대산 산록에 동대사로 불리는 관음암을 세우고 상왕봉 능선 아래에 북대사로 불리는 미륵암, 정상으로 올라가는 비로봉 산자락에 일명 중대사로 불리는 사자암이, 비로봉코스 지능선과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쪽에 나란히 뻗은 지능선 자락에 일명 서대사로 불리는 수정암을 세웠다. 바로 천심십도를 형상화한 것이다.

안종선교수 블로그 http://blog.naver.com/sungbosungbo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남양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