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종선교수

수원의 문화재는 파장동에 많은 편이다. 또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보존의 가치가 있는 역사적 유물이나 과거의 유물도 파장동이나 부근에 적지 않다.

수원은 화성 때문에 다른 문화재가 별 주목을 받지 못하는 편이기는 하다. 특히 장안구 파장동 383번지에 자리 잡은 중요민속자료 123호는 수원에서 보기 드믄 고가(古家)임에도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1번 도로를 타고 시내로 들어와 파장동이 끝나기 직전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불과 300여미터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이병원 가옥은 길가에 간판이 세워져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들어가 보면 두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진 이병원가옥이 나타나는데 과거에는 헛간채가 슬레이트였다고 하는데 직슴은 모두 짚으로 엮은 이엉을 이었다.

파장동은 예로부터 광주(廣州) 이씨들의 동족 마을로서 많은 동종(同宗)들이 살고 있다. 특히 이병원가옥이 있는 이 동네는 예전만 해도 100여 호의 큰 마을을 이루었던 곳이다. 그러나 도시화의 바람은 주변환경을 변화시키고 문화의 질을 변화시켰다.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으로 가는 길가에 있는 이병원 가옥은 새마을 사업이 한창이던 1970년대에 집이 국도 옆에서 보이는 집이라 하여 행랑채는 양기와로, 헛간은 슬레이트로 지붕을 이었으나, 안채는 초가지붕이 그대로 내려오다가 1993년에 지붕을 모두 초가지붕으로 새로 바꾸어 이음과 동시에 벽 부분을 대부분 수리하게 되었다.

이병원 가옥은 수원시에서 유일하게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가옥이다. 이병원은 1903년 이 집에서 출생하여 성장한 뒤에도 거의 100여년동안을 계속하여 살았다. 지금은 사망한지 3년이 되었고, 그를 10여년동안 모시고 살던 딸 이순홍이 홀로 살고 있다. 

안채는 일고주오량의 홑처마, 우진각지붕집으로서 판대공으로 장도리와 장혀를 받치고 있다. 초가집으로 일고주오량집은 보기 드믄 경우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배치는 겉으로 보기에 초가집 구조이나 내부적으로는 기와집, 혹은 대가집의 구조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종도리 아래 ‘龍 光緖十四年戊子 三月十八日 酉時 立柱上樑 家主戊申生’라 씌어 있는 상량문이 남아있어 1888년에 건축된 것을 알 수 있다.

마루 가운데 놓인 들보에도 ‘龍龜’라는 글씨가 씌어 있다. 초석은 자연석을 썼으며, 발의 길이는 2,500mm, 도리칸 길이 2,340mm, 퇴칸은 1,100mm이고 실은 2칸이 앞뒤로 놓인 건넌방-마루-안방-부엌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넌방이 겹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며 전면에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

마루 쪽으로 올리는 건넌방의 문은 청판 달린 1짝 여닫이 띠살문과 ‘用’자살 미닫이 문으로 되어 있으며, 안방의 경우 가운에 ‘井’자살을 둔 2짝 맹장지형 분합문과 ‘用’자살 미닫이문이 달려 있고, 분합문에 딸려 구름 모양의 등자쇠가 남아 있다.

마루는 우물마루로 귀틀의 너비는 150mm이며, 마루널의 너비는 300mm에 길이는 360mm이고, 구석진 퇴에 오래된 뒤주가 남아 있다. 이밖에도 건넌방의 다락 측벽과 안방의 측벽에 연장과 다식판을 넣어두었던 조그만 벽장이 달려 있는 것이 이채롭다. 부엌은 입식으로 개조했으며, 뒷마당에 따로 김치광이 있는데 원래 있던 위치보다 앞쪽으로 당겨져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큰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사랑채는 삼량 홑처마 우진각지붕집으로 초석 및 기단은 안채와 동일하다. 보칸의 길이는 2,470mm, 도리칸의 길이는 2,480mm이며, 퇴칸의 길이는 1,880mm로 다른 가옥에 비해 퇴가 넓게 잡혀 있다. 처음에는 광-광-외양간-나무간-문간-툇마루 딸린 사랑방으로 되어 있었으나 현재 광과 외양간은 방으로 개조되어 사용되고 있다.

또한 대문에서 들어서면 안마당 쪽으로 들어서기 전에 1짝 판문이 임시로 달려 있어서 여름에 대문을 열어놔도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이는 전형적인 풍수적 설계로 충살을 방어하는 방법이며 전착후관의 법칙을 완성하는 것이다.

사랑방에는 바깥마당 쪽으로 툇마루가 놓였고, 그 전면에 2짝 판문을 달아 이 문이 닫혀 있을 때는 툇마루가 보이지 않는다. 현재 외부에서 보면 이러한 상태인데, 원래는 이 사랑방 앞에 있는 전나무를 끼고 둥글게 담이 둘러 있어서 사랑방이 지금처럼 외부에 노출되어 있지 않고 담 옆으로 난 조그만 1짝 판문을 통해 드나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사랑방의 툇마루가 외부에 그대로 노출되지 않고 판문으로 박고 별도의 출입문을 둔 모습이 약간 다르지만 이 근처의 이윤재 가옥에서도 볼 수 있다.

바깥마당에 별도로 떨어져 있는 5칸 헛간채는 삼량홑처마 우진각지붕집으로 닭장과 일꾼방으로 쓰였던 것이 지금은 살창과 판문이 달린 광과 방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병원 가옥은 군데군데 새로 복원을 한 흔적이 남아 있는데 원래의 모습에 약간의 과장이 섞여 개수된 부분들도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지붕의 경우 초가에서 기와로 바꾸었던 것을 다시 이엉을 올리고, 기단도 돌이 내려앉아 다시 돌렸는데, 예전에는 낮고 둥글고 작은 돌이 둘렀으나 새로 들이면서 지금의 높고 큰 돌로 바꾸었다고 한다.

또한 안채는 2단, 사랑채는 1단으로 기단이 놓였었으나, 안채의 전면부 기단은 모양이 앞으로 둥글게 나오도록 바뀌었다. 또한 담을 따라 돌로 축대를 쌓아 단을 높인 모습이 보이는데, 원래는 흙으로 한단 정도 높게 돌렸던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담도 흙담이었다가 시멘트 블록 담으로 고쳤었는데 몇 년 전에 이를 다시 흙담으로 고쳤다고 한다. 이외에 부엌 및 사랑채의 방들은 사용자의 생활에 적합하도록 개조되었다.

이병원가옥은 주변이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다. 현재의 모습은 과거와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안내 간판에 적혀 있듯 풍수지리적으로 매우 길하고 요건을 갖추었던 가옥이었을 것이다.

현재의 모습을 가늠하여 보면 마을 앞의 큰 도로에서 약 20여미터를 들어가 집이 자리하고 있는데, 도로 옆은 지형적으로 개천이 흐르는 곳이기에 물에 해당한다. 물은 재물을 관장한다. 이병원 고가 뒤로는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는데 지금도 야간 높은 지형이다. 이와 같은 이치로 보아 이병원 가옥은 뒤로 산을 등지고 앞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배치를 지니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모습은 변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문주조(門柱灶)의 배치가 어울리지 않는데, 아마도 지금은 여러 가지가 변했을 것으로 보인다. 담이 없었거나 더 넓었을 수도 있으며 지금은 밖에 있는 창고까지 담으로 둘러쳐져 있었을지 모른다.

관산은 기본적으로 풍수를 배우기 위해 음택이나 양택지를 찾아다니는 행위이다. 이와 같은 행위를 하며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양택의 경우에는 오랜 세월이 흐르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현상에 대해서도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각 구성의 요소들을 잘 파악하고 풍수적 이법을 적용하여야 한다. 이병원 가옥의 경우에는 주(主)를 찾음에 있어 주의를 요하고 문은 정해져 있으나 변화의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문에서 들어서며 공간의 배치에 주의를 하고 내부적으로 후원의 넓이에 주의를 해야 한다.

안종선교수 블로그 http://blog.naver.com/sungbosung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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