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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의 풍수여행-15 '선유도의 파랑을 맞으며'
2013년 12월 23일 (월) 09:50:10 안종선교수 sungbosungbo@naver.com

   
▲ 안종선교수

오늘은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 육지에 사는 사람이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대단한 특혜락호 생각된다. 예전 같으면 섬이란 육지인이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섬이란 바다위에 떠 있는 육지이다. 그 육지에도 인간이 살고 혹은 역사가 이루어진다. 나도 그 역사에 한 획을 긋기 위해 배를 탄다.

군산항에서 서쪽으로 45㎞에 위치한 고군산 군도. 조선시대 수군진영이 있던 곳으로, 진영의 이름이었던 군산을 지금은 육지에 내어주고, 섬들은 옛 군산이라는 뜻의 ‘고군산’이 되었다.

고군산군도는 총 6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중 16개가 유인도다. 그러하니 유인도보다는 무인도가 더욱 많은 곳이다.

사실 유인도를 찾아가지만 시간을 비롯하여 모든 것이 충족이 된다면 무인도에 상륙하여 긴 밤을 세우며 출렁이는 파도가 들려주는 바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군산항 국제여객선터미널 옆에 자리한 연안여객선 터미널에서 배를 탔다. 유람선 터미널에서 배를 탈 수도 있지만 겨울철에는 유람선이 출발하지 않는다. 20008년 12월 19일도 마찬가지로 유람선은 출항하지 않았다.

초쾌선으로 가면 40분이 걸린다는 대략 50킬로미터의 거리, 그러나 고속선이라고 불리는 내가 탄 배는 1시간 30분이 걸렸다. 그다지 커 보이지도 않는데 이 배는 200톤이 넘는다 하는 배이고 여객선이다. 이런 바다에서는 차도선이 좋을 것이다.

만약 차도선이라면 우리가 탄 차를 싣고 들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차도선은 부선의 일종의 달리 카페리라고도 불리는 배로 차를 실을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출발하는 배는 차도선이 아니었다. 더구나 속도도 느린 여객선이다. 그

런데 왜 고속선이라 부르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물때가 좋지 않아 원래의 항로에서 약간 비틀어 빙 돌아 가다보니 더욱 많은 시간이 걸렸다.

   

군산항은 서해안에 자리하고 있지만 어떤 항구와도 달리 앞이 열려있는 항구이다. 서해안의 항구 대부분이 섬으로 둘러쳐져 바람이 밀려오는 것을 막은 것과 비교하면 군산항은 바다 쪽으로 열린 형태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군산항 너머 자리한 장항방향은 길고도 긴 방파제를 쌓아 밀려드는 바람과 파도를 막고 있다. 이런 구조는 육지에서 앞이 열린 구조를 지닌 마을이 동구에 나무를 심어 비보풍수를 이룬 것과 유사하다.

철썩
파도가 친다. 여객선은 용감하게 돌진하는 제2차세계대전의 독일 전차처럼 달려나간다. 여객선이 엔진소리를 드높히며 풍력발전기가 10기나 서있는 군장신항만 끄트머리를 지나자 좌측으로 새만금 방조제가 보였다.

새만금방조재는 이미 완성되었고 고군산군도의 신시도에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여객선은 풍력발전기 앞을 지나 비스듬히 남서쪽으로 뱃길을 잡아 신시도를 멀리 바라보며 지나친다.

신시도는 올망졸망 크고 작은 섬들이 모여 있는 고군산 군도의 섬 중에서도 가장 면적이 넓은 섬이다. 그만큼 사람도 많이 살 것이다. 새만금 방조제로 연결되니 이젠 섬이되 섬이 아니다.

   

신시도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아왔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조개무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 이전부터 사람이 살아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신라초기에 신시도 주변에 풍성한 청어를 잡기 위해 김해김씨가 처음으로 입주하여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전한다. 신라시대 때는 문창현의 심리, 신치라 불렀으며 일제강점기부터 신시도라 하였다. 또 신라시대의 대학자인 최치원 선생과 근세의 대유학자인 간제 전우선생이 거주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사실 최치원은 실존 인물이지만 신선같은 인물이다. 최치원이 오래전 옥구군 옥구면에서 한동안 서원을 열고 후학들을 육성하던 그 시기에 해변가인 하제에서 서해를 바라보다 신시도의 중앙에 우뚝 솟아오른 월영봉을 보고 지체함 없이 명산이라고 칭찬을 하였다고 전한다.

최치원은 뗏목 같은 풍선(風船)을 타고 신시도에 도달하여 월영봉에 올라 그곳을 월영대라 칭하고 돌담을 쳐 거처를 만들어 놓고 때로는 생식을 하며 글을 읽었다고 한다.

유적은 역사를 증명한다. 한때 신시도 마을 청년들이 고운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고운이 글 읽었던 곳에 흔적이 남아 있는 돌담을 손질 보존하였고 지금도 월영봉 아래 미니해수욕장 가는 길에 그 유적이 남아있다.

해발 199m인 월영봉은 그다지 높지 않으나 신시도의 규모로 보아서는 제법 높은 산이다. 선유 8경중에 한가지로 월영단풍이라 했다. 가을이 되면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 월영봉 옆에는 해발 187.2m 대각산이 있으며 정상에는 새만금전망대가 있다.

가장 높기 때문에 이곳에 전망대가 설치되었다. 높은 두 봉우리 사이는 저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서쪽에는 미니 몽돌해수욕장, 동쪽에는 1970년대 만든 간척지와 백포섬의 갯벌이 있다. 취락은 남쪽 평지인 지풍금(깊은금)마을 부근에 집중되어 있고 한라횟집 등 몇 곳의 식당이 있다.

신시도를 지나쳐 한참동안 달린다. 일렁이는 바다 때문인지 뱃전이 낮아졌다 높아지기를 반복한다. 다행히 큰 배이기에 멀미는 덜하다. 오래 걸리지 않아 멀리 선유도와 연결된 다리가 보이기도 한다. 손에 잡힐 듯 가깝지만 다가가는데는 적잖은 시간이 소요된다.

1시간을 달리면 드디어 선유도의 북쪽 해안을 지나고 대장도와 장저도의 북쪽 해변을 지나 선유도와 무녀도 사이를 이어주는 선유대교 밑을 지나 어렵사리 무녀도와 닿는다. 애초에는 선유도가 먼저 닿는다고 들었는데 물때 탓으로 배가 늦어 무녀도에 배를 댄다고 한다. 무녀도와 선유도는 다리로 이어져 있어 이동이 불편하지 않다. 다리는 넓지 않아 차는 다닐 수 없으나 자전거는 다닐 수 있다.

   

선유도와 연결된 세 개의 섬 가운데 가장 호젓한 곳은 무녀도다. 무속의 제자인 무녀가 많아서가 아니라, 여자가 없어서도 아니다. 섬의 형상이 춤추는 무녀를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무녀도는 첫인상부터 조용하기만 하다. 섬 전역이 고요하다 못해 쓸쓸해 보인다. 녹음방초 우거진 숲길도, 비교적 넓고 반듯한 마을길도 인적도 뜸하다.

무녀도는 고군산군도의 섬 중 가장 길고, 큰 섬이다. 고군산군도의 가장 안쪽에 위치해서인지 비교적 관광객들이 적다. 그러나 물산은 풍부하다. 무녀 1구의 서더리 마을은 예부터 ‘서두르면 굶지 않는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바다 어장이 풍족했다. 천혜의 자원이 바다에 있는 셈이다. 지금도 바지락과 굴이 풍족하고, 김양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외지에서 들어오고 있다.

배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부려놓고 곧 방향을 틀어 선유도 선착장에 닿는다. 이곳에서 약간 기다렸다가 다시 군산으로 떠나간다.

선유도, 이곳이 고군산군도의 중심이다. 고군산군도는 신시도, 야미도,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 곶리도, 횡경도, 방축도, 말도 등 새만금방조제 바깥에 63개의 섬들이 별처럼 모여 있어 ‘호수에 뜬 별들’이라 불렸다. 정말 멀리서 보면 그리 생각해도 좋을 만하다. 배를 타고 지나가면 보이는 모습이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옛날 군산’이라는 고군산(古郡山)군도는 고려시대에는 한반도와 중국을 잇는 길목이었고 서남해 쪽에서 개경이나 한강으로 가는 중간허리였다. 또 조운선이 풍랑을 피해 정박하는 중간 기착지였기 때문에 세곡을 노리는 왜구들의 노략질로 고려 말에는 폐허가 되어갔다. 그나마 야미도와 신시도는 새만금방조제로 인해 이제는 육지나 다름없게 됐다.
군산항에서 선유도까지의 뱃길은 대략 50KM. 굵직한 산맥의 연봉 같이 띄엄띄엄 드러난 군도를 지나다 보면 보통의 경우 1시간 10분쯤 항해하여 선유도 선착장에 닿는다. 선유도는 그 이름 땜문에도 시선이 가지만 서해안에서 가장 인기 높은 피서지 중 하나다. 그렇다고 해도 인접한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와 다리로 연결돼 있어 피서객이 몰리는 성수기에도 인파를 피할 만한 데는 있다.
조선 태조 6년(1387)에 군사전략적 요충지인 군산도(현재의 선유도)에 수군 만호영을 설치했다. 어찌 보면 그다지 크지도 않은 섬에 만호영이라니. 그 정도로 군산도가 중요한 입지를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종실록지리지」만경현조에 “군산은 병선을 정박시킨 곳으로, 섬이 둘 있는데 군산도와 망입도가 있다”고 했다.

군산진은 본디 군산도(선유도)에 있었는데 세종조에 군산진을 오늘의 군산시 영화동 해변의 진포(鎭浦)로 옮기면서 이름도 따라서 군산으로 확정됐으며 과거의 군산진은 고군산(古郡山)이 되었다. 그러니 고군산군도의 선유도는 지금 군산시의 원적지인 셈이다.

누군가 말했듯 고군산군도는 연꽃 형상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연꽃처럼 서로 둘러싸인 형상의 고군산 군도의 가장 중심에 있는 섬이 선유도다. 선유도는 가장 안정된 섬이다. 다른 섬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파도와 바람을 막아줘 호수같이 잔잔한 물결에 고운 모래가 십리길에 이른다고 할 만큼 풍광이 뛰어나다. 신선들이 노닐던 곳이라는 선유도에는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비롯한 선유8경이 섬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선유도 여행의 베이스캠프는 선유도의 선유2구인 진리마을이다. 중요한 것은 마을의 입지이다. 풍수지리에서도 마을의 입지를 찾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를 양기풍수라 부른다. 양기풍수가 있고 나서야 집을 배치하고 짓는 양택풍수가 뒤를 잇는다.

바닷가라 해도 풍수지리의여러가지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 특히 산을 등지는 배산임수의 법칙은 바람이 불어오는 섬이기에 더욱 정확하다.

진리마을은 고운 모래가 깔려‘명사십리’라고도 불리는 선유도해수욕장과 맞닿아 있고, 진안 마이산의 암봉을 닮은 망주봉이 빤히 바라보이는 마을이다. 또한 선착장, 학교, 우체국, 보건소, 파출소, 민박집, 식당, 자전거 대여소, 슈퍼마켓, 모텔, 노래방 등이 몰려 있어 선유도의 행정 중심이고 명동이기도 하다.

피서철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피서객들이 북적거려 장바닥처럼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좁고 군산시에서 멀어 나름의 편의시설은 부족하지만 피서를 떠난 피서객이나 머리를 식히는 사람들이 조용하고 오붓하게 바다의 정취를 즐기기에는 선유1구의 옥돌해수욕장이 좋다.

선유도에는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닌 절경을 구분한 선유팔경이 있다. 큰비가 내리면 망주봉 암벽을 타고 예닐곱 가닥으로 쏟아지는 망주폭포기 그 하나이며 선유도해수욕장의 황홀한 일몰을 가리키는 선유낙조, 무녀도의 3개 무인도 사이로 고깃배가 돌아오는 삼도귀범, 장자도 밤바다의 고깃배 불빛을 일컫는 장자어화, 금빛 모래가 깔린 선유도해수욕장의 명사십리, 고군산군도의 12개 봉우리가 춤을 추는 것 같다는 무산12봉, 신시도의 월영봉(199m)을 오색으로 물들이는 월영단풍, 기러기가 내려앉은 듯한 형상의 모래톱인 평사낙안이 그것이다.
기회는 많이 오지 않는다. 선유도에서는 해넘이를 놓쳐서는 안 된다. 고군산군도의 서쪽 바다와 하늘을 불사르는 일몰은 화려함을 넘어 장엄하다. 특히 망주봉 정상에서 보는 해넘이가 장관이지만, 선유도와 무녀도 사이의 선유대교나 이 다리 아래의 해안도로에서도 멋진 일몰과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선유도는 바다에 널려 있는 하나의 섬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섬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명량해전에서 크게 승첩을 거두고 이곳 고군산도에 찾아와 열하루동안(1597 9.21∼10.3) 머물면서 명량해전의 승첩을 조정에 보고하기 위한 장계를 초안하여 서울로 보냈고, 왜란 중에 아산 본댁이 왜적들에게 분탕질을 당해 잿더미가 되어 버리고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는 비보를 전해 듣는 등 충무공의 통한이 서린 유서 깊은 고장이기도 하다.

이곳의 수군진터에서 동편 건너, 망주봉 아래에 있는 오룡묘는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제신당으로서 그 옛날에는 이곳에 기항하는 항해선들도 해로의 안전을 기원하는 기도처이었다고 한다.

선유도의 입지는 육지의 연화부수형과 다를 바가 없다. 단지 물과 육지가 바뀐 셈이다. 육지에서 연화부수가 물로 둘러쌓여 있다면 선유도는 주변에 수많은 섬들이 둘러쌓아 바람을 막은 형국이다. 따라서 파도가 자고 물이 잔잔하니 사람이 살만한 곳이다.

안종선교수 블로그 http://blog.naver.com/sungbosung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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