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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의 풍수여행-9 '현등사에서 만난 고승의 향기(1)'
2013년 11월 11일 (월) 09:28:28 안종선교수 sungbosungbo@naver.com

   
▲ 안종선교수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저기 저 남쪽 지방에 해당하는 경상도나 전라도에서는 아주 멀지만 경기도나 서울에서는 아주 가까운 곳에 봄여름이나 가을을 가리지 않고 찾아가기 좋은 사찰이 하나 있다.

물론 어디나 사찰은 있다 하고 말하면 달리 할 말이 궁색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드는 사찰이 하나둘인가?

현등사. 이름만 들어도 허공에 그림이 그려진다. 무언가 알 수 없지만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 같고 기이하고도 가슴이 들썩거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름. 다른 사람은 달리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오래도록 이름난 산과 암자를 뒤지고 유명인의 묘역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며 여행을 한 나에게 현등사라는 이름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몸이 붕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름임에 틀림없다.

오늘도 길을 나선다. 많은 준비는 필요하지 않다. 사실 깊은 산을 타려면 바닥이 탄탄한 신발에서 가시에 버틸 수 있는 튼튼한 옷, 햇빛을 가려줄 모자까지 챙겨야 한다.

산을 찾지 않고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하려고 보면 수많은 계획과 시간 이용에 대한 여러 참고 사항이 필요하다. 그러나 풍수 여행은 여러 가지 계획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달리 생각하면 더욱 많은 준비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이나 서류 같은, 책이나 각 지방 자치단체가 내놓은 자료들을 뒤져 무엇을 뒤지고 무엇을 살필 것인지 꼼꼼히 준비하는 자세는 필요하지만 우선 길을 떠나는 것에서 시작하여 조상이 남긴 유물과 태초의 지구가 빚어 놓은 자연물을 살피는 것으로 이미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오늘은 경기도 가평으로 향한다. 경기도 가평에서 현등사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가평에 자리한 현등사를 찾아갈 생각이다.

경기도 동북지역에 위치한 가평군의 제법 큰 면소재지인 북면의 현리에서부터 비교적 소상하게 표지판이 길을 몰라 허둥거리는 나그네의 길잡이로 나서서 구불구불 양의 창자 같은 길의 안내를 해주고 있으며 아울러 현리에 사는 사람치고 현등사를 물어보면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현등사 계곡은 가평군 하면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는 산골마을 하판리와 포천군과의 접경에 있는 경기의 소금강이라 불리어지는 운악산(935m) 동쪽계곡을 말한다. 경기도 북부지역이지만 가평이라면 왠지 멀고 외지다는 느낌이 들지만 막상 찾아가 보면 그렇지도 않다.

남양주시의 진접읍이나 서울의 접경인 구리시 방향에서 찾아간다면 달리 선택의 방법이 있다. 구리에서 일동으나 이동으로 향하는 길이 제격이다. 10여년 전에 2차선으로 포장되어 길이 좋으므로 속도감도 있을 뿐 아니라 주변 산야의 경치나 운치가 과장을 하면 금강산이 부럽지 않을 정도이다.

한참을 달려 남양주를 지나 포천군 지역에 해당하는 서파검문소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청평 방향으로 향한다. 이곳 도로도 몇 년 전에 2차선으로 새로이 포장되어 달리기도 좋고 주변 경치가 그만이다.

주마관산이라는 말이 있다. 말을 타고 달리며 주변을 보는 것이라 했던가? 그러나 시대가 변해서인지 차를 타고 달리면서도 볼 것이 아주 많다.

가평군으로 들어서서 달리다가 현리라는 지명이 보이면 2차선 도로를 내려와 마을로 들어선다. 부근에서는 제법 큰 마을이 길손의 발을 묶는다. 현리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현등사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하면 곧 시골길이다.

혹 길을 모르면 지나가는 아낙이나 마을 사람들에게 하판리나 현등사로 가는 길을 물으면 친절하게 알려준다. 2차선 도로는 하판리로 이어지는 길인데 외길이기 때문에 현등사를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현등사 입구인 석거리에서 다리를 건너 매표소 위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된다.

또 다른 길은 청평검문소 방향에서 찾아오는 것이다. 춘천이나 가평에서 오기에 편한 길이고 구리에서도 마석이나 대성리, 청평을 거쳐 오는 길이기도 하다. 경춘국도상에 자리하고 있는 청평검문소가 기점이다.

청평검문소가 있는 조종교에서 좌회전 하여 8키로 정도를 달리면 현리가 나온다. 현리를 구성하는 마을 중심부를 지나쳐 서파 검문소 방향으로 가다보면 마을 끝에서 오른쪽으로 하판리로 가는 길이 나오고 표지판에 현등사라 적혀 있다.

드디어 운악산이 자태를 드러낸다. 운악산은 강항 사내의 모습처럼 보인다. 오래 걸리지 않아 하판리 마을 끝 현등사 계곡 입구에 도착한다. 차가 갈 수 있지만 경사가 심할 뿐 아니라 여행자에게는 걸어가는 것이 더욱 운치 있고 어울리는 일이다. 단순한 복장으로 팔을 휘휘 내저으며 운악산 동편에 자리한 현등사 계곡을 오른다.

현등산은 아름다운 산이다. 바위가 많으면 나무가 적을 수도 있는 법이지만 바위와 나무가 어울러 시선을 잡는다. 봄에는 새악시의 볼이 생각나는 산이지만 가을은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는 미스터 코리아를 연상시키는 산이다.

산새 울음소리가 정겹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가늘고도 긴 물소리가 어쩐지 가을 바람소리처럼 소슬하기만 하다. 청평에서 북동쪽으로 약 20km 떨어진 높이 936m의 운악산은 광주산맥의 한 갈래로 일명 경기 소금강이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자태라고 부르기보다는 자잘한 멋이 난다고 부르고 싶은 모습이다. 주봉인 망경대를 둘러싸고 커다란 바위들이 봉우리마다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듯 하늘로 향해 치솟아 있으며, 산 중턱에는 오래된 사찰 현등사와 저 아래 물 맑은 조종천은 매끈한 처녀아이의 허리 같은 매력으로 한층 볼거리를 더해 준다.

산의 내음이 코를 파고드는 계곡에 들어서면 처음에는 산허리를 비스듬히 타듯 올라가다가 오래지 않아 계류를 건너가게 되는데 이때 눈에 파고드는 계곡지대가 절경을 이룬다.

흔히 볼 수 있는 듯 느껴지다가 갑자기 눈을 잡는 유려함이 보이는 바위 위로 물이 흐른다. 걸음을 재촉하며 계류를 끼고 올라가면 마치 분칠을 해 놓은 듯 회백색의 암반 위로 흘러내리는 계류와 하늘을 가리는 수림이 볼 만하다.

가슴을 쓸어내리듯 시원한 소리로 번잡함을 지워버린 폭포를 지나 현등사에 이르면 하늘을 덮은 울창한 수림에 대낮에도 길이 어두컴컴할 정도다.

 

   

 

촤아아아!
어찌 보면 한 여름의 폭우소리 같고 달리 생각하면 박새의 울음소리가 섞여 들리는 듯한 폭포소리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운악산의 중턱인 현등사 입구에 있는 폭포를 무우폭포라고 부르는데 암반과 그 위에 흐르는 계류를 기울여 놓은 듯 유유히 흐르는 거폭으로 30도-40도 사이의 기울어진 바위를 타고 흘러 그 밑에 심연을 이룬 모습이다.

무우폭포는 운악산 자락에 깊숙하게 숨어 있다. 자태가 부족하여 숨은 것이 아니라 비경의 도리를 다하기라도 하듯 높거나 낮지 않은 지점에 오롯하게 숨어 있다.

단순한 운악산 자락이 아니라 심장 떨리게 멋진 노랫가락이 생각나는 폭포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무심히 지나치려던 발걸음을 멈춘다. 이곳 무우폭포는 그 유명한 민영환 선생님의 암각서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은 민영환 선생님이 구한말 언저리에서 끝없는 나락을 향해 기울어가는 나라를 보시며 탄식했던 곳이라서 유명해진 곳이다. 그래서일까? 민영환 바위라고도 불리는 무우폭포는 역시 계곡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현등사의 또 다른 숨은 매력이다.

운악산 현등사계곡의 무폭포를 바라보노라니 한편의 시가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나는 시인이 아니고 일찍이 시를 배우지 못했으니 한탄으로 대신 할 수밖에……. 고개를 들고 바라보면 세상의 오진이 모두 씻겨 내려갈 듯 맑은 물이다.

계류(溪流)의 폭은 넓지 않고 계곡의 출중함을 보여주듯 높지도 않다. 지나치게 바지런한 소녀의 치맛자락에 아침 일찍 뜯은 쑥이 향기를 뿜듯 소박하지만 나름의 아리한 향기가 있다. 

그냥이라고 하자. 무작정이라고 하자. 이유 없이 바라보기만 하도록 하자. 그도 저도 아니면 그냥 물이 흐른다고 하자. 시간을 재촉하여 서두를 필요도 없다.

그냥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트이고 기분이 좋아지는 계류의 물과 귀를 파고드는 물소리이다. 목적을 가지고 찾아가지 않는다면 천하를 다 가진 것처럼 평화로우리라.

누구의 손도 타지 않아 너무도 맑아 옥구슬로 이루어진 그 모습처럼 흐르는 물길이 시선을 잡는다. 청정계곡을 따라 내려오던 깨끗한 물이 항거하듯 앞을 막아 선 바위를 타고 내려가 떨어져서 그 아래에 부끄러운 듯 조그만 소(沼)를 이룬다

추아아아!
다시 심장으로 파고드는 파도 소리가 몸 구석구석을 파고들어 손가락 마디마디 맺히는 듯하다. 근처에 머물고 있다고 하는 생각만으로도 온 몸의 땀이 사라지고 폐부가 시원해진다.

천상의 폭포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는 걸까? 새들이 세상의 모든 음표를 구해 드러내기라도 하려는 듯 지저기는 소리가 무릉도원을 생각나게 한다. 폭포소리가 징이며 북이라면 새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는 괭가리 소리이기도 하고 장구 소리 같기도 하다.

아니 어쩌면 해금이나 아쟁에 비유함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다시 돌아본다. 울창(鬱蒼)한 숲속에서 얼음 같이 찬 물이 사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모습이 어쩐지 꿈속에서 본 모습 같고 귀를 울리는 웅장하기까지 한 폭포의 소리는 마치 한여름의 시원한 폭우가 생각나게 하니 단지 무우폭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지지 않는다면 심신이 온전치 못하리라 

아름다운 산이요, 아름다운 자연이다. 다른 나라의 어떤 절경에 비추어도 모자람이 없고 부족함이 없는 우리의 산이다. 개성의 송악산, 파주의 감악산, 서울의 북악산, 그리고 경기 최고봉인 가평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에 속하는 운악산은 산수가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한 산이다. 이 산 깊은 곳에 오롯이 자리 잡은 현등사는 규모로 보아 경기도 가평군에서는 가장 큰 절이라 할 수 있다.

발을 멈춘다. 올라왔던 구절양장의 오솔길만큼이나 운치가 넘치는 그곳, 가파른 운악산 동편 산비탈 아래 안정된 터를 베게 삼듯 온화한 자리에 고즈넉하게 깃들어 있는 현등사!

이 절은 비좁은 산자락 한 귀퉁이에 보광전, 극락전, 요사 등의 건물이 질서 정연하게 들어서 있다. 그리 넓진 않은 절 앞마당엔 고려 말기의 것으로 알려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3호 삼층석탑과 그 아래 마치 참새의 재잘거리는 주둥이처럼 생긴 산의 끝자락, 채마밭 언저리에는 보조국사의 사리탑으로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는 지진탑이 눈길을 끈다.

더구나 이 지진탑은 고려 희종(12세기 말) 때 보조국사 지눌이 현등사를 재건할 당시 경내의 지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도 이 현등사의 역사를 충분히 알 수 있다.

현등사의 역사는 계곡에 흐르는 물에 비견되듯 그 시원이 아득하기만 하다. 그 시작이 아득한데 어찌 온전하기를 기대하고 바라겠는가. 사실 현등사의 유래는 신라 23대 법흥왕(6세기)때 창건된 절이라고 전하지만 그 후 수백 년 동안 폐허로 방치되어 있다가 고려 희종 때 보조국사가 바로 이 운악산 중턱에서 불빛이 비치는 곳을 찾아가 관음전을 발견하고 석대 위에서 옥등을 발견하여 절을 중건, 그로부터 “등불을 보았다”라는 뜻으로 현등사[現燈寺]라 명명하였다 한다.

아득하게 먼 산 중턱에 자리한 것이 어쩐지 남양주 조안면의 운길산에 자리 잡은 수종사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궁벽한 산에 자리 잡은 그 모습은 서로 다른 멋으로 다가온다.

현등사에는 몇 점의 문화재가 남아있어 방문하는 사람의 시선을 잡아끈다. 삼층석탑과 지진탑 외에도 현등사에는 본산인 양주 봉선사에서 만들었던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68호 봉선사 동종이 소장되어 있으며, 부근에 함허대사 부도, 북악부도 등 여러 개의 부도들이 이곳 운악산 기슭 곳곳에 흩어져 있다.

문득 생각나는 물음이 적지 않다. 이 높은 산기슭에 유난히 고승들의 부도가 많은 이유가 있는가? 다른 절의 경우 부도밭이 있어 부도와 여러 종류의 석물을 함께 배치하고 보관하지만 이곳 현등사는 부도밭이 따로 없고 곳곳에 부도가 흩어져 각각이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의미는 불교적 색체보다는 풍수적인 색체가 강하다는 것이 보면 볼수록 다가오는 생각이다. 그런데 부도란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일까?

현등사는 부도가 많다. 숫자적으로만 보면 대찰에 비교할 바는 아니나 기이하게도 산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몇 개의 부도가 지형적으로 요소요소를 점하고 있어 많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도(浮屠)란 승려의 사리를 안치한 묘탑(墓塔)을 총칭하는 이름으로 부도(浮圖), 부두(浮頭), 포도(砲圖), 불도(佛圖)라고도 한다.

부도는 원래 붓다(Buddha)의 음역으로 불(佛), 또는 불교를 의미하였고, 뒤에 가람탑이나 승려의 묘탑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주로 절의 입구에 대량으로 세워져 있는데 특별히 산천경계가 뛰어나고 명당이라고 알려지거나 명당으로 조사된 곳에 고승의 사리를 모시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이곳 현등사의 부도는 명당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 세밀하게 살피자면 음택의 혈(穴)이라 지칭할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음에랴!

모든 부도가 같은 모양이지는 않다. 일정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부도는 사리를 안치하는 곳이므로 탑신을 받치는 기단부와 탑신을 얹고 있는 옥개석(屋蓋石), 그리고 상륜부(上輪部)로 이루어져 있다.

이 모습은 어느 형태를 지니든 그다지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탑신부는 팔각으로 이루어져 있어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이라 일컬으며, 한국의 경우 신라 때 건립된 석조부도는 모두 이 형태를 기본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후 다양한 형태의 부도가 만들어졌는데 주로 탑형과 석종형이 주류를 이룬다. 절의 입구에 자리한 부도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은 몸이 둥근 기둥 모양인데 그 모습이 마치 항아리 모양이라 어쩐지 우리네 퉁퉁한 어머니의 배를 보는 듯도 하다.

한국에서 부도는 선종(禪宗)이 유행한 통일신라 말부터 본격적으로 조성되었다. 그 이전에도 부도가 조성되었을 가능성은 있으나 역사란 기록으로 존재치 않으면 의미가 있어도 알 수 없는 것 아니던가?

《삼국유사》에 의하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부도는 신라 원광법사(圓光法師)와 혜숙(惠宿)의 부도 및 백제 혜현(惠現)의 부도라 전하고 있어 한국의 부도 조성 시점은 당(唐)나라 정관연간(627∼649)이라는 견해가 있다.

기억은 고사하고 기록조차 까마득한 세월의 일이니 어쩌면 그 역사가 바로 우리 땅의 불교 역사를 대변해 주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것들은 남아 있지 않으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전흥법사염거화상탑(국보 제104호)이다. 팔각원당형을 기본으로 한 이 부도는 한국석조부도 양식의 기점을 이룬다.

이외에 대표적 부도로 대안사적인선사조륜청정탑(보물 제273호), 쌍봉사철감선사탑(국보 제57호), 보림사보조선사창선탑(보물 제157호), 선림원지부도(보물 제447호), 실상사수철화상릉가보월탑(보물 제33호)등이 있다. 팔각원당형 부도 이외에도 석종형(石鐘型)이 있는데, 현재 태화사지십이지상부도(보물 제441호)가 남아 있다. 이중 몇몇은 둘러보았고 찾아가 보았으니 이 또한 인연이 아닐까 한다.

사찰의 주변에는 많은 부도가 있다. 어쩌면 부도밭은 사찰과 조금 이웃하여 지어져 절의 영역을 알리거나 떨어진 곳에 배치하여 청청한 곳을 소점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오랜 역사가 흘러 이제 부도는 스님의 영탑 정도로, 혹은 사찰의 많은 부속시설 중 한곳으로 스치듯 지나치는 경우가 많으나 그곳에는 역사가 있고 우리네 선조들의 지식이 오롯히 담겨져 있으니 눈여겨 볼 일이다.

사찰은 예로부터 명당을 찾아 지은 경우가 많다. 신라시대 이후 지어진 절은 더욱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풍수지리의 비조격인 옥룡자 도선국사가 천수백개의 절을 지었다고 전설은 말하는데 하나같이 풍수지리에 바탕을 두었다고 하니 눈여겨볼 일이다.

건너다보니 절터라는 말도 있으나 예로부터 절은 아무 곳에나 짖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자리 잡기와 목적에 따라 지어졌다. 특히 지역을 대표하는 대찰의 경우에는 하나같이 명당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있다. 즉, 대찰이 자리한 곳은 대부분 명당이라는 속설은 무시할 것이 아니다.

대찰 주변에는 사리탑이 적지 않다. 주로 절 입구 일주문과 금강문 사이의 언덕정도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절 뒤나 잘 앞마당에 자리를 잡는 경우도 있다.

간혹 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명당이라 이름붙일 수 있는 혈(穴)에 부도가 자리하는 경우도 있다. 흔히 오롯하게 올라선 언덕 모양이며 이는 전통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여주 신륵사, 보은에 자리한 복천암, 양주 회암사, 강화도의 정수사, 등이 이에 속한다.

이 사찰에 자리한 사리탑은 하나같이 풍수지리에서 주장하는 혈의 조건을 갖춘 곳에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이와 같은 결과로 보아 고승의 사리를 좋은 곳에 모시고자 하는 제자들의 염원이 느껴진다.

감회가 새롭다 보니 사리탑 하나에도 심취하지 않을 수 없다. 가파른 산길을 허위허위 올라 도착한 산사의 경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현등사 3층석탑이다. 지진탑 위,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현등사3층석탑은 유형문화재 제63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이 삼층석탑은 높이 3.7m로서 자연석을 기초로 삼고 그 위에 4각 하대석과 다시 두터운 상대갑석으로 기단부를 이룬다. 특히 이 탑이 세워진 위치는 풍수적으로 아주 중요한데 그 위치는 절묘하다 못해 심상하기까지 하다.

현등사 내부로 흘러온 운악산의 지맥은 현등사 뒤의 주산에서 머문 듯 자태를 드러내어 한 줄기가 산신각 부근에서 끝나고 다른 한 줄기가 산신각 우측으로 돌아 대웅전의 측면을 스치고 경내를 지나 지진탑 윗 부근 안정된 바위를 바탕으로 하여 하나의 혈처를 맺는다.

이 삼층 석탑은 대웅전 측면에서 지진탑으로 흐르는 지맥에서 혈을 이룬 지점에 자리하고 있어 참으로 선현들의 지혜와 무섭도록 치밀한 기감(氣感)을 알 수 있게 한다. 이 탑을 돌며 선현들은 기를 수련하고 득도를 하기 위해 무진장의 염원을 하였을 것을 생각하면 까슴이 서늘해지는 감동을 느낀다.

다시 고개를 돌려 살펴본다. 3층석탑이 자리하며 혈상을 이룬 곳, 탑의 경사면이라고도 부를 수 있지만 풍수학인들이 말하는 전순(氈脣) 아래에는 가평하판리삼층석탑지진탑이 자리하고 있다.

경내의 가장 하단부에 자리하고 있는 가평하판리삼층석탑지진탑(加平下板里三層石塔地鎭塔)은 1983년 9월 19일 경기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이 탑의 높이는 1.88m로 비교적 작지만 풍수학적으로는 매우 커다란 의미가 있다.

 

   

 

긴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흔히 지진탑으로 불리는 이 탑은 고려 희종 때의 보조국사 지눌이 세운 탑이라는 뜻으로 보조국사탑이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진탑이라는 이 이름이 심상한 것 같지는 않다. 어느 탑이나 이러한 이름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지진탑이라는 이름을 풀이하면 땅(地)을 누르는(鎭) 탑(塔)이라는 이름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 아닌가? 신성한 스님의 탑파에 이런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후인의 장난이나 불찰이 아닐 것이다.

역사가 오래면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법이다. 퇴락이란 말도 생겨나고 때로는 부흥이니 일신우일신이니 하는 말도 생겨나는 것이다. 신라 법흥왕 때 창건된 현등사는 오랫동안 폐사지로 남아 있었다.

어느 날 보조국사가 이 부근을 지나가는데 멀리서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석등에서 불빛이 비치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곳에 사찰을 재건하기로 결심한 지눌은 사찰 경내의 지기(地氣)를 진압하기 위하여 이 지진탑을 세웠다고 한다. 전설은 그 끝을 알 수 없으나 참으로 현묘함이 있다.

지진탑은 현등사 경내의 언덕 아래에 서 있는데, 본래부터 이곳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재 기단부 및 1층 탑신석과 상륜부(相輪部)가 없어져 원형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풍수지리적으로 비견해 살펴보고 적용해 본다면 지진탑이 자리하고 있는 위치적으로 보아 애초부터 이곳에 세워져 있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 모양도 단순한 듯하지만 마디마다 단순함을 이겨내는 심상함이 있다. 하단에 있는 지대석(地臺石)에는 2단의 괴임대가 있고, 네 귀퉁이의 합각(合角)이 뚜렷하다.

기단의 갑석(甲石)은 2장의 판석으로 네 귀퉁이의 합각선이 뚜렷하다. 탑신석(塔身石)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구성되었다. 탑신석에는 각각 양 우주(隅柱)가, 옥개석의 하단에는 옥개 받침이 있고, 2층이 4단, 3층이 3단으로 상층으로 갈수록 수가 줄어든다.

낙수면의 경사가 비교적 완만하고, 추녀는 끝에서 반전(反轉)이 심하다. 각층 옥개석 위에는 탑신받침이 있다. 상륜부는 노반석(露盤石: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보주 등의 상륜부재를 받치는 장식)만이 남아 있는데, 지름 5㎝의 찰주공(擦柱孔)이 있다.

 

   

 

풍수학인의 눈에는 탑이 만들어진 시대와 그 형식보다도 어쩌면 자리한 곳의 위치와 주변 지세가 더욱 먼저 눈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지진탑이 자리한 곳은 좁지만 반듯한 혈판이 만들어져 있다.

혈이란 풍수인들이 찾는 상승의 길지라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혈이라는 말로 단정 지으면 흔히 조상을 모시는 음택의 터로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넓게 생각하면 좋은 기가 뭉친 곳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불가의 적용에 따른다면 탑을 새우거나 당우를 세우고 혹은 고승의 부도를 세우기에 좋은 곳이라는 의미가 주어진다. 상부에 자리한 현등사3층석탑의 전순아래 자리 잡은 형태를 지닌 이 지진탑이 자리한 혈판은 규모에 비교에 완벽한 당판의 구조를 지니고 있으므로 관심을 가지고 살필 필요가 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사방을 살펴보니 사람은 간 곳 없고 천하의 운무만 가득하더라는 옛 시인의 오언절구가 생각나는 모습이다. 해발 935m의 높이를 지닌 운악산은 가평8경중의 6경으로 지정되었다.

운악산은 이름 그대로 구름을 뚫은 봉우리와 같이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산중턱에 자리 잡은 현등사와 백년폭포, 눈썹바위 등 절경이 산재해 있다.

현등사에 올랐다면서 어찌 화담당이 자리 잡은 천년의 수도처, 좌선의 터를 내버려두고 돌아갈 수 있겠나? 산천은 험준하고 수목은 총잡헌디 어쩌고 시작하는 적벽가의 새타령이라도 불러야 할 것 같지만 이곳은 조용한 수도처이고 선현 성승의 부도탑이 있는 곳이 아닌가. 숙연한 마음으로 사방을 둘러본다.

화학산의 최정상인 망경대에 올라 사면을 둘려보면 남으로는 멀리 능선 좌측으로 현리 시가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고, 뒤쪽으로는 포천 땅이 한 눈에 들어온다.

북으로는 멀리 명지산과 화악산이 시야에 아물거리기도 한다. 단순히 높은 것이 아니라 조망권이 우아하고 가시거리가 뛰어나다.

안종선교수 블로그 http://blog.naver.com/sungbosung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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