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종선교수
배가 올망졸망한 섬들 사이를 지나 금세 청산도 도청항으로 데려다준다. 완도항을 떠난 지 50여 분 만이다. 드디어 반나절 만에 청산도에 도착했다. 청산도의 관문이랄 수 있는 도청항은 그다지 크지 않지만 졍겨움만으로는 더 이상 따라갈 곳이 없다.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 아니라 어찌 보면 조금은 한산한 곳이지만 배가 다가가면 갈매기가 날아오르고 항구 외곽에서 바라보아도 고즈녁한 구름 사이로 보이는 슬로우 길들은 결코 한산하거나 배척의 느낌을 주지 않는다.

2007년 12월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Slow city)로 인증 받은 청산도는 인지하고 있듯‘느림의 섬’이다. 느리게 걷고자 한다. 느리게 생각하고 느리게 움직이는 섬이다. 그래서 청산도에서는 서두름이 없어야 한다.

서두른다는 것이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는 걸어야 제격이다. 걸어야만 제대로 볼 수 있고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그 것이 청산도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청산도를 한 바퀴 도는 길 이름도 ‘슬로길’(42㎞)이다. 마라톤 경주에 사용하는 거리와 동일하다. 의도적이든 자연적이든 걷는 미학을 주장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길을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로 지정했다고 한다.

수없이 많은 곳을 여행했지만 청산도는 처음이다. 청산도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전라도에 살기만 해도 그나마 가깝겠지만 경기도나 서울에서 사는 사람에게 청산도 여행은 크게 계획을 세울 일이다. 그러나 한번 정도는 찾아볼 가치가 있는 섬이다.

그래서 때늦은 여름에 찾아왔다. 이미 여름의 휴가가 지난 후라 그다지 붐비지 않아 더욱 좋았다. 만약 한여름에 찾아왔다면 슬로우가 아니라 모르기는 해도 슬프리였을 것이다. 사람이 적은 섬을 보는 것이 더욱 운치가 있다.

청산면은 [靑山面, Cheongsan-myeon]은 전라남도의 최남단이다. 완도군의 남부 해역에 위치한 면으로 차부선이라 부르는 배를 타지 않으면 출입이 불가능하다. 이곳 사람들에게 흔한 섬 중의 하나일 수 있지만 외부인에게 섬은 열망이며 열병이다.

주도인 청산도를 비롯하여 5곳의 유인도와 9곳의 무인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면소재지인 청산도가 가장 볼만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청산도를 찾아 여행을 하고 느림의 미학에 빠져 시간을 즐긴다.

청산도는 제법 큰 섬이다. 대부분들의 섬이 그렇듯 큰 섬 주위로는 작은 섬들이 있기 마련이다. 서쪽으로는 소안도, 북으로 신지도, 북동쪽으로 생일도가 있으나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다. 청산도는 작은 섬이 아니다.

따라서 섬의 중앙부근에는 제법 높은 산도 있다. 주도인 청산도의 북쪽에는 대봉산(大鳳山, 379m), 남쪽에 보적산(寶積山, 335m)이 있다. 어쩌면 완도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점한 산인지도 모를 일이다.

섬은 바위가 멋진 곳이 많다. 즉 섬의 서부에 암석해안이 발달하고 있어 낚시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좋을 것 같다. 배가 도착하는 청산항 일대의 도청리 일대는 면의 중심지이다. 항구 앞쪽으로도 장도를 비롯하여 큰 섬 2개가 있어 파도를 막아주는 형상이다.

 

 

도청항에 내리면 멀리 슬로우 길이 언덕을 넘어간다. 그 언덕 위가 바로 서편제를 촬영하였던 장소이다. 계절이 맞으면 유채꽃이 핀다고 했지만 여름에는 인연이 없다. 늦은 여름 태양이 이글거리지만 청산도는 푸른 물결이 보이고 파란 하늘이 가슴을 벌리고 다가오라 한다.

슬로우 길을 따라 오른다. 차를 타고 오를 수도 있지만 걷는 것이 어울리는 곳이다. 부두를 벗어나지마자 청산도 슬로길이 시작된다. 도청항 쉼터에서 잠시 멈추어 주변을 조망하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커피 한잔이 절로 생각나는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바라보다 슬로길 1코스로 접어든다.

청산도의 상징이랄 수 있는 서편제길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우선 도락리로 향한다. 언덕길로 들어서기 전에 오른쪽으로 길이 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슬로우 1길이 아어지는 곳이다. 포구 끝자락에서 도락리와 만난다. 작은 마을이 아니다. '슬로길'을 알리는 화살표를 따라 들어간 마을길에서 바다를 바라보다 가슴을 편다.

청산도라는 섬의 이미지가 머릿속으로 파고든다. 앞으로 볼 것이 많은 청산도이지만 도락리의 풍광을 마주하니 모든 것이 자유롭게 느껴진다. 도시의 회색빛 갤러리와는 상반되는 개념의 캔버스가 펼쳐진다. 파도소리는 크지 않으나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짙은 푸름의 이야기를 듣는다.

동구정(東口井)에는 우물이 있다. 어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우물이다. 아직은 더운 날씨가 목덜미에 땀이 차게 한다. 목을 축이고 해변을 본다. 소나무들이 해변을 가린 모습이 마음속의 한 페이지에 선을 긋는다. 어디선가 본 그림이다. 그러나 조금 다른 그림이다. 현대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건물들과 새로 지은 기와집이 어우러진 마을의 좁은 길을 따라 내려간다.

멀리 바다가 보인다. 바다는 마을 앞으로 다가와 있다. 포구는 마치 항아리처럼 생겼다. 입구가 좁고 안이 넓은 호리병 모양이다. 예로부터 바닷물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일반적으로 풍수지리 이론에서 물은 재산이라고 본다.

물이 들어오는 모양이면 재산이 들어오고 물이 나가는 모습이 보이면 재산이 나간다는 것이 풍수지리의 이법이다. 그러나 바닷물에 대해서는 해석이 구구하다. 혹자는 바닷물은 재산으로 보지 않는다는 의견을 재시하고 혹자는 포구처럼 안으로 들어온 물은 재산으로 본다는 의견을 개진한다. 나름 의견을 개진하자면 후자를 따르고 싶다.

바닷가로 내려간다. 해변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어서 오라고 손을 흔든다. 짙은 녹음을 자랑하다 모새 검은 색으로 착각을 일으키는 곰솔이 줄지어 있다.

오래전 섬사람들이 바닷바람을 막고 풍수해를 방어하며 물고기를 불러들이는 목적으로 심은 방풍림이다. 해변의 방풍림은 일종의 풍수림이다. 이 방풍림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주민의 생활은 훨씬 불편해졌을 것이다.

이 방풍림은 바람을 차단하는 목적으로 심어진 풍수림이다. 물론 바람을 차단하므로 마을 안으로 모래가 날려드는 것도 차단한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그늘을 만드니 쉼터로 제격이다. 곰솔 숲 앞바다를 바라보니 돌무더기가 마치 부채처럼 펼쳐져 있다.

물이 빠지면 독살을 볼 수 있다. 그 독살에는 자연산 굴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물이 빠져야만 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바위들은 바닷고기를 가두기 위해 만들었던 고기잡이의 지혜, 밀물과 함께 밀려온 고기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게 가둬 잡는 독살이다.

마을에 하루 묵을 장소를 정하고 청산도 이곳저곳을 살펴보기 위해 길을 나선다. 곰솔을 벗어나 고개를 돌려보면 마을 뒤로는 계단식 논이 자리하고 있다.

육지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어쩐지 이곳의 계단식 논은 눈을 잡는 마력이 있다. 서편제 길로 오르기 위해 길을 오른다. 좁은 길이라 차가 다닐 수는 없다.

마을 어른이 걸어오시기에 초분에 대해 물었다. 청산도에 초분은 여러기가 있지만 가장 최근의 것은 이곳 도락리에 있다고 한다. 가르쳐주는 길을 따라 오른다. 길은 계단식 논을 지그재그로 돌아 영화 <서편제> 촬영지였던 당리로 이어진다. 그 길에서 가까운 곳에 초분이자리한다.
밭 언저리에 초분(草墳)이 보인다. 이곳의 풍습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초분이다. 봉분이 아니라 초가로 만든 임시무덤이다. 드라마에서 보았던 초분이 아니라 이곳 사람들이 알려준대로 진짜 시신이 들어있는 초분이다.

초분장은 시신을 땅에 묻지 않고 짚으로 가묘(假墓)를 만들었다가 2〜3년 지나 본매장을 하는 장례풍습이다. 초분은 남해안 도서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장례문화의 하나로 부모에 대한 효성과 뭍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풍습이다.

사람이 죽으면 돌로 약 50센티 쯤 쌓고 관을 올려 놓은 뒤에 짚으로 지붕을 만들어 덮어 두었다가 3년 후 뼈만 남은 뒤 매장한다고 한다. 썩지 않은 성한 몸으로 선산에 들면 조상이 노해 풍랑을 일으켜, 사람들을 저 세상으로 잡아간다는 믿음에 생긴 풍습이라고 전한다.그리고 큰 돌을 매달아 단단히 고정시킨다.

이 초분에는 청산도 사람들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세속에 찌든 육신을 땅에 바로 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다로 고기잡이 나가 장례에 참석하지 못하는 가족에 대한 배려도 담겨있다.

장례풍습은 일정한 지역의 문화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나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풍습이며 문화인 것이다. 초분도 이 지역의 문화인데 단순히 청산도만의 풍습은 아니고 전라도 섬 지역 곳곳에 남아있던 풍습이다. 이 풍습으로서 우리의 장묘문화에서 옛 모습의 한 면을 볼 수 있다.

안종선교수 블로그 http://blog.naver.com/sungbosung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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