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철수(편집위원)
어느새 4월 중순이다. 늘 머무는 자리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콘크리트 블록의 길을 따라 웅크리고 있다가 움직임이 있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온 지 보름 지난다.
물론 교문동 우거(寓居) 골목에는 목련이 이파리의 기지개에 꽃잎이 떨어지고 연갈색으로 퇴색되는 모습에서 어느새 봄이 이제 중간에 걸렸다는 자신의 게으름을 발견한다.

모처럼 어제는 서울 나들이를 했다. 하긴 내 사는 곳에서 서울이라 해도 걸어서 10분 남짓이면 중랑구 망우리니 서울이란 말이 무색하기도 하다.
일정이 강남 방향이니 버스도 타고 전철도 타야하는 것이 어색하기는 하지만, 활발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도 솔솔하다.

버스를 타면 아무리 좋은 자리가 비어 있더라도 오른쪽에 앉는 습관이 있어 어제도 그렇게 했다.
광장동으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아차산자락의 마을 어귀에는 벚꽃이, 산 두덩에는 머리에 새치가 끼듯 듬성듬성 진달래가 살랑거린다.

한다리 마을을 지나고 아치울에 들어 설 때 개나리가 대형커튼을 내리고 있었다. 산속의 봄의 전령 역할을 하는 나무가 진달래라면, 사람살이로 분주한 땅에는 개나리가 아닌가하는 결론을 내려 본다.

태를 묻고 35년을 자랐던 구리시 수택동 이촌말 옛집을 떠올린다. 유독 유년의 본향(本鄕)이 차창을 따라 환등기를 돌려 본다. 그때는 초가집 담을 개나리가 대신하고 웃자란 개나리 울타리 넘어가 무척이나 궁금해 뒤로 돌아가 봐도 특별한 것이 없는 동산 끝인데도 개나리가 피고 나면 여러 차례 울타리 뒤를 서성이던 대여섯 살의 아이.

울타리 어딘가에 숨어있는 돼지감자 아니 뚱딴지를 되새겨 본다.
아버지는 어디선가 모종을 구해 다섯 남매의 간식으로 캐 주시던, 개나리가 피는 봄이 오면 9년 전 귀천(歸天)하신 아버지와 돼지감자가 연상된다.

그래서인가 5년전 한식에는 아차산자락의 개나리 꽃대를 잘라 아버지의 산소 입구에 꽂아 놓았지만 몇 해 동안 그 꽃을 보지 못했으나 올 한식에는 만개는 하지 않았지만 꽃망울을 틔는 모습을 보았다. 올 한식에 다녀온 지 한주가 지났으니 아차산자락의 개나리처럼 울타리를 치고 있겠지 생각을 해 본다.

'순결, 희망, 나의 사랑은 당시보다 깊습니다.'는 개나리가 지니고 있는 의미라 한다.
개나리울타리와 아버지, 그리고 뚱딴지 그것은 아버지가 우리에게 준 내리사랑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불혹과 지천명의 중간에 걸렸는데도 유년의 개나리 울타리와 돼지감자가 유난히 그리워지는 특별한 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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